고통 앞에서, 나는 다시 십자가를 떠올린다


힘들 때면 나는 가끔 한 편의 영화를 꺼내 본다.


바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고, 결국 제거를 결심한다.


그리고 제자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은 붙잡힌다.

그 이후의 장면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다.


쇠와 뼈, 날카로운 조각이 달린 채찍이 온몸을 찢는다. 살은 갈라지고, 살점이 뜯겨 나간다. 실제보다 더 실제같다.


영화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다. 성경속 실제였기에, 보는 내내 숨이 막힌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몸으로 십자가를 짊어진 채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까지 끌려간다.


그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고통의 행렬이다.


그 고통을, 어찌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골고다 언덕에 도착해 십자가 위에 못이 박히는 순간 한 손에 못을 박고, 다른 손을 맞추기 위해 팔을 강제로 잡아당긴다.


어깨가 탈골되고, 근육이 찢어지며 또 하나의 못이 박힌다. 그리고 두 다리를 모아 다시 못을 박는다.


그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모든 고통이 기록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이 영화를 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 너무 잘하려고, 너무 간절해서 오히려 더 안 되는 것 같다.


경기가 끝난 뒤, 아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그 눈물은 가슴을 찢는다.


지켜보는 고통은 십자가에 하소연하고,남은 미련은 술잔에 털어 넣으며 다시 다음 경기를 생각한다.


풀리지 않는 많은 스트레스는 점점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결국 몸이  무너진다.


속이 뒤집히듯 울렁거리고,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가 된다.


밤새 뒤척이다 영화를 다시 틀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고통이 과연 그분의 고통 앞에서 고통이라 말할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서면 조금은 버틸 힘이 생긴다.


결국 사람은 고통 속에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시 일어선다.


이영화의 끝은 부활이다. 나는 오늘도 십자가를 떠올리며 다시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