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희< 수필가>



[칼럼] 선거 현수막의 펄럭임 속에서, '1cm의 정직'을 묻는다



한순희< 수필가>


시내 교차로마다 형형색색의 선거 현수막이 어지럽게 펄럭인다. 


그 위에 새겨진 수려한 문구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에서 씁쓸한 기운이 밀려오는 것을 지울 수 없다. 


평소 그들의 행적과 삶을 빤히 아는 이들에게, 화려하게 포장된 그 구호들은 때로 역겨운 위선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지인의 연락을 받고 남편과 함께 밥을 먹은 뒤 근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찻집은 건축가인 남편이 오랜 시간 고민하며 설계한 공간이었다. 마침 우리를 알아본 주인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고, 자연스럽게 거리의 현수막 이야기가 화두로 올랐다. 


주인 역시 거리에 내걸린 얄팍한 구호들을 보며 "참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자리를 옮겨 들른 골프연습장 역시 남편의 손길을 거쳐 지어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문득 '설계'와 '운동'이 가진 기묘한 공통점을 생각했다. 건축 설계도는 단 1c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작은 오차가 결국 건물의 뒤틀림을 낳기 때문이다.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한 자세와 정직한 훈련이 없으면 결코 좋은 점수를 낼 수 없다.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가장 정직한 세계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정치의 세계는 어떤가. 1cm의 오차조차 용납하지 않는 설계도나 운동장과 달리, 그곳은 자신의 부끄러운 행적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감추는 뻔뻔함이 통용되는 곳처럼 보인다.


현수막 바람 속에서 '검증된 술꾼'은 어느새 '검증된 일꾼'으로 둔갑해 있고, '검증된 전과자'는 지역을 발전시킬 '능력 있는 새 일꾼'으로 포장되어 당당하게 표를 구걸한다. 


과거의 파렴치한 행동을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도, 선거철만 되면 시치미를 뚝 떼고 세상 가장 고결한 천사이자 지식인인 양 말하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깊게 앓아눕는다.


인간의 이중성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힘든 혼란 속에서, 문득 '나만 정직하게 살면 손해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회의감이 밀려온다.


현수막의 화려한 겉포장에 속아 위선을 용인하는 사회라면 그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건물에 설계도가 필요하듯, 우리 사회에도 도덕적 기준이라는 정밀한 설계도가 필요하다. 


편법과 위선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 혼란한 세상에서, 다시 채를 잡고 정직한 궤적을 그리며 정신을 수양해 본다. 


정치가 외면한 '1cm의 정직함'을, 운동장 위에서라도 눈물겹게 지켜내고 싶기 때문이다.